기동력·벌떼마운드로 SK 첫우승 견인

2007프로야구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창단 후 첫 우승의 감격을 누린 SK의 돌풍은 야구팬의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야구명가 현대는 해체 위기에 빠져 위태로운 한해를 보냈다.

관중 400만 시대를 열어 프로야구 중흥의 계기를 마련했지만 현대 사태가 여전히 프로야구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셈이다. 최희섭, 서재응 등 해외파의 줄 이은 복귀와 한국야구의 산실이었던 동대문 야구장의 해체도 야구팬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다사다난했던 2007년 한국야구의 7대 이슈를 살펴본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던가. 현대가 해체될 위기 속에서 시작한 2007프로야구는 SK의 천하통일로 끝났다. 비룡군단의 여의주가 된 김성근 감독이 이끈 SK는 시범경기, 정규시즌, 한국시리즈를 모두 제패했다. 트리플크라운은 해태(93년), 현대(98년), 삼성(2002년)에 이어 역대 네 번째다.

김성근 감독이 선보인 토털베이스볼은 위력이 대단했다. 주전과 후보를 구별하지 않고 각자의 장점을 끌어낸 토털베이스볼은 시범경기부터 한국시리즈까지 시종일관 큰 힘을 발휘했다. 프로야구를 평정한 김성근식 토털베이스볼은 시즌 초에는 ‘뛰는 야구’, 시즌 중반에는 ‘벌떼 마운드’, 한국시리즈에서는 ‘자율야구’로 변신했다.

김성근 감독은 취임하자마자 기동력 야구를 강조했다. 깊숙한 안타를 치면 2루타를 만드는 주루 플레이와 2루타를 안타로 만들 정도로 빠르고 정확한 외야 송구를 주문했다. SK의 ‘뛰는 야구’는 코나미컵 아시아시리즈에서 일본시리즈 우승팀 주니치까지 격파했다. 일본 대표팀 호시노 센이치 감독이 SK의 기동력을 칭찬하면서 “주니치의 패배에서 교훈을 얻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2002 한ㆍ일 월드컵 당시 4강 신화를 이룬 축구 대표팀처럼 SK도 멀티플레이어의 활약이 돋보였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멀티플레이어’를 잘 활용했다. 선수층이 얇지만 팀내 경쟁을 일으키면서 다양한 전술을 펼치기 위한 전략. 외야의 젊은피 3인방 조동화, 박재상, 김강민도 국민우익수 이진영과 간판타자 박재홍을 벤치로 밀어낼 만큼 맹활약해 SK 전력을 극대화했다.

김성근 감독의 용병술은 한국시리즈에서 더욱 빛났다. 통계를 신봉하는 김 감독이지만 철저하게 선수들을 믿었다. 한국시리즈 MVP 김재현과 4차전 승리투수 김광현 등은 투타에서 맹활약하며 감독의 믿음에 보답했다.

결국 SK의 자율야구는 한국시리즈 1, 2차전에서 진 뒤 역전 우승하는 첫 사례를 만들었다. 코나미컵 예선에서 주니치를 이기고도 결승에서 우승을 내준 게 유일한 실패였다.

19일 괌으로 우승여행을 떠난 비룡전사들은 내년에도 토털베이스볼을 앞세워 코나미컵 우승까지 차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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